료안지의 석정
다른 표기·이름료안지(龍安寺) / 竜安寺 / 료안지 석정 / 료안지 방장 정원 / 도라노코와타시(虎の子渡し) / 교요치(鏡容池) / 아부라도베이(油土塀) / 조로쿠안(蔵六庵)

요점
석정은 약 250제곱미터의 흰 모래에 5무리 15개의 돌 배치. 1924년에 사적·명승, 1954년에 특별명승
방장(지정 명칭은 료안지 본당 竜安寺本堂)은 1606년(게이초 11년)에 세운 세이겐인의 방장을 1797년(간세이 9년)에 옮긴 것으로, 1967년에 중요문화재
관람은 3~11월 8시~17시, 12~2월 8시 30분~16시 30분이며 연중무휴
2026년 가을은 9월 26일~11월 29일의 토·일요일에 폐문 후 특별 관람(사전 예약·중학생 이상)으로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그린 ‘운룡도’ 전 92면을 공개
15개의 돌과 5개의 무리: 석정의 구성
석정은 방장 남쪽에 있으며, 동·남·서 세 면을 쓰키지베이로 둘러싼 약 250제곱미터의 직사각형 흰 모래밭에 크고 작은 15개의 돌을 5개 무리로 나누어 놓은 가레산스이 평정(平庭)입니다. 나무는 심지 않고 흰 모래와 돌만으로 산수를 나타냅니다. 자연을 좁은 공간에 축소해 추상화한, 가레산스이의 극치라고 일컬어집니다.
이 돌 배치는 예로부터 ‘도라노코와타시(虎の子渡し)’, 곧 새끼 호랑이 건너기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왔으며, 무엇을 나타낸 것인지를 두고 여러 상징적인 해석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어디에서 바라보아도 15개의 돌을 한꺼번에 다 볼 수는 없다고도 합니다.
석정을 둘러싼 쓰키지베이는 아부라도베이(油土塀)라고 불립니다. 1976년 호우로 담의 일부가 무너져, 이듬해인 1977년에 발굴 조사와 수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담의 지붕은 기와지붕에서 얇은 나무판으로 이은 고케라부키(柿葺)로,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누가 언제 만들었나: 작자와 연대의 여러 설
료안지는 1450년(호토쿠 2년), 무로마치 막부의 간레이로 나중에 오닌의 난에서 동군을 이끈 호소카와 가쓰모토가 도쿠다이지 가문의 별장을 넘겨받아, 묘신지의 기텐(義天)을 개산으로 맞아 선종 사찰로 바꾼 것이 시작입니다.
석정의 작자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창건과 동시에 가쓰모토가 신소(真相)라는 인물에게 명해 방장 앞에 만들게 했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한편 연대는 무로마치 시대로 여겨지며, 15세기 중엽(15세기 말로 보는 설명도 있습니다)에는 만들어져 있었다고 봅니다. 절은 1488년(1499년으로 보는 설명도 있습니다)에 방장이 부흥되어 여러 당이 갖추어졌지만, 1797년(간세이 9년) 화재로 방장 등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석정은 옛 모습을 잘 간직한 채 지금에 전해진다고 합니다.
석정을 바라보는 방장과 교요치 앞뜰
석정을 바라보는 방장은 국가 중요문화재로서의 이름이 ‘료안지 본당(竜安寺本堂)’입니다. 간세이 9년 화재 뒤 료안지와 인연이 깊은 세이겐인(西源院)의 방장을 옮긴 것으로, 건물 자체는 1606년(게이초 11년)에 세워졌습니다. 정면 21.0m·측면 18.0m의 이리모야 양식·고케라부키 건물로, 방장 형식 본당 가운데서도 특히 규모가 큰 예로 꼽힙니다.
방장 동쪽 정원에는 료안지가키(龍安寺垣) 울타리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칭찬했다고 전해지는 와비스케 동백(侘助椿)이 있습니다. 방장 북동쪽에는 다실 조로쿠안(蔵六庵)이 있으며, 미토 미쓰쿠니(水戸光圀)가 기진했다고 전해지는 쓰쿠바이(손 씻는 돌그릇)도 있습니다. 조로쿠안은 평소에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산몬에서 방장으로 가는 길에 펼쳐진 교요치(鏡容池)는 귀족의 별장이던 시대의 흔적으로 여겨지는 연못입니다. 참배로와 주변 숲과 함께 ‘료안지 정원’으로 명승이 되어 있으며, 석정을 둘러싼 환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역으로 여겨집니다.
료안지 경내: 산몬·교요치·방장·석정의 위치
료안지의 국가 지정 문화재
| 지정 명칭 | 범위 | 종별(지정 연도) |
|---|---|---|
| 료안지 방장 정원(龍安寺方丈庭園) | 방장 남쪽의 석정 | 사적·명승(1924년), 특별명승(1954년) |
| 료안지 정원(龍安寺庭園) | 참배로·교요치와 주변 숲 | 명승(1955년) |
| 료안지 본당(竜安寺本堂) 부(附) 현관 | 방장 | 중요문화재(1967년) |
방장의 운룡도와 2026년 가을 폐문 후 특별 관람
호소카와 가문의 후손인 전 총리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가 방장(본당)을 장식하는 장벽화 ‘운룡도’를 그렸습니다. 2022년(레이와 4년)에 일부 40면이 봉납되었고, 2025년(레이와 7년) 5월에 나머지 52면이 완성되었습니다. 어린 용부터 늙은 용까지 9마리의 용을 그린, 전체 길이 110m가 넘는 전 92면의 대작입니다.
2026년 가을은 9월 26일~11월 29일의 토·일요일에 폐문 후 특별 관람으로 92면 전체가 한꺼번에 공개됩니다. 16시~18시 30분의 약 2시간 30분 동안 저녁의 석정 외에, 평소에는 공개하지 않는 불전과 조로쿠안도 안내합니다. 사전 예약제로 하루 20명까지이며, 요금은 중학생 이상 5,000엔, 초등학생 이하는 참가할 수 없습니다.
지금 어디서 볼 수 있나 / 가는 법
료안지는 우쿄구 료안지 고료노시타초 13에 있습니다. 석정은 방장 툇마루에서 바라보는 정원이며, 교요치 주변도 산책할 수 있습니다. 관람은 유료이고 연중무휴입니다. 금각사·닌나지와는 ‘기누카케노미치(きぬかけの道)’로 이어져 있습니다.
- 란덴(게이후쿠 전철): ‘료안지’역에서 도보 약 8분
- 시 버스: 59계통 ‘료안지마에’에서 내리면 바로(JR 버스도 ‘료안지마에’에 정차). 50·52·55계통은 ‘리쓰메이칸다이가쿠마에’에서 도보 7분
- 관람 시간: 3~11월은 8시~17시, 12~2월은 8시 30분~16시 30분
- 관람료: 고등학생 500엔, 초·중학생 300엔. 성인 요금은 절에 확인
- 세계유산 ‘고도 교토의 문화재’의 구성 자산 가운데 하나(1994년 12월 등록)
이 항목의 미니 퀴즈
료안지의 석정은 돌의 배치 때문에 예로부터 어떤 이름으로 알려져 있을까요?
1976년의 호우로 일부가 무너진 료안지 석정의 쓰이지베이(築地塀) 흙담. 이듬해 수리 때 담의 지붕은 무엇으로 바뀌었을까요?
출처·확인 정보
내용 확인일: 2026년 10월 29일
업데이트: 2026년 10월 29일
참고 자료는 일본어로 되어 있습니다.
- 文化庁「国指定文化財等データベース 龍安寺方丈庭園」
- 文化庁「国指定文化財等データベース 龍安寺庭園」
- 文化庁「国指定文化財等データベース 竜安寺本堂」
- 文化庁「世界遺産推薦書 古都京都の文化財 3(b) 内容説明及び目録 O 龍安寺」
- 京都市「京都の庭園文化」(京都を未来に伝える文化遺産)
- 京都市「眺望景観 龍安寺周辺エリア」
- 京都市観光協会「京都観光Navi 龍安寺」
- 京都市観光協会「京都観光Navi 龍安寺(桜)」
- 京都市観光協会「京都観光Navi 龍安寺 細川護熙氏揮毫「雲龍図」完成記念!閉門後特別拝観」(2026年)
- 京都市観光協会「Kyoto City Official Travel Guide: Ryoan-ji Temple」
- 京都市・京都観光推進協議会「きょうと修学旅行ナビ 龍安寺」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