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IELD GUIDE TO DEEP KYOTO
교토초로컬 사전
교토 주소의 ‘아가루·사가루(上る·下る)’는 어느 쪽일까요? ‘西院’은 왜 읽는 법이 두 가지일까요? 지명의 유래와 읽기 어려운 지명부터 거리·역사·생활 상식까지, 교토에서 만나는 작은 궁금증을 공식 자료와 지역의 배경을 바탕으로 알기 쉽게 해설합니다.
전체 106개 항목, 출처와 확인일 표시
106개 항목
START WITH A QUESTION
궁금했던‘왜?’에서걷기 시작합니다.
교토의 주소, 읽기 어려운 지명, 동네의 구조. 지금 알고 싶은 것에 가까운 길을 골라 보세요.

주제별로 교토를 펼치다
주소와 지명, 동네의 구조부터 축제, 음식, 역사, 사찰·신사와 문화재까지. 관심 가는 입구에서 교토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세요.
주소·거리
아가루·사가루, 도로명, 동네의 형태. 교토의 주소를 풀어 보기 위한 입구입니다.
11개 항목이름을 읽다지명·읽는 법
폰토초, 아케즈도리, 우즈마사. 읽는 법 속에 역사가 숨은 지명을 따라갑니다.
47개 항목동네를 읽다동네·학구·생활
모토갓쿠, 지조본, 오도이. 지금의 생활로 이어지는 동네의 구조를 해설합니다.
9개 항목말을 읽다교토 말
뜻만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교토 말(京ことば)의 쓰임과 배경을 살펴봅니다.
6개 항목계절을 읽다연중행사
동네의 달력에 뿌리내린 축제와 행사를 계절의 흐름과 함께 소개합니다.
9개 항목생활을 읽다음식과 도구
교토의 부엌에서 쓰여 온 말과 음식 문화의 배경을 해설합니다.
7개 항목시대를 읽다역사·인물
헤이안쿄, 무로마치 막부, 히데요시, 막부 말기. 교토의 모습을 바꾼 시대와 인물을 따라갑니다.
9개 항목아름다움을 읽다사찰·신사·문화재
사찰과 신사의 건축, 정원, 그림, 고문서에서 교토에 이어져 온 아름다움과 신앙을 읽어 냅니다.
8개 항목먼저 알아 둘 교토의 세 단어
관광 안내에서는 놓치기 쉬운, 생활 속 교토부터 시작해 봅시다.
사전 항목

아가루·사가루·히가시이루·니시이루
교토시 도심의 주소에서 上る(아가루)는 북쪽, 下る(사가루)는 남쪽, 東入る(히가시이루)는 동쪽, 西入る(니시이루)는 서쪽으로 가는 것을 나타냅니다. 비탈길을 오르내린다는 뜻이 아니라, 두 도로가 만나는 교차점에서 어느 쪽으로 간 곳인지를 보여 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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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주소가 긴 이유
교토의 주소가 길어 보이는 것은 행정상의 마을 이름·번지에 더해 ‘어느 거리와 어느 거리의 교차로에서 어느 쪽으로 가는가’라는 길 안내가 들어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거리를 따라 마을이 생겨난 역사와, 같은 이름의 마을을 구별해야 하는 사정도 배경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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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갓쿠
모토갓쿠(元学区)는 교토시에서 지금도 지역 활동과 방재 등에 쓰이는 지역 단위입니다. 1869년(메이지 2년) 반구미 초등학교의 구역에서 비롯되었으며 시내에 222곳이 있습니다. 지금의 초등학교 통학구역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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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조본(地蔵盆)
지조본(地蔵盆)은 마을의 지장보살(오지조상)을 모시고,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과 마을의 안전을 기원하는 행사입니다. 교토에서는 지장보살의 연일(緣日)인 8월 24일 전후의 토·일요일을 중심으로, 조나이(町内, 마을) 단위의 여름 행사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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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난독 지명
교토의 난독 지명 50곳을 중심부의 거리 이름·마을 이름, 라쿠호쿠, 라쿠사이, 히가시야마·야마시나, 후시미, 교토부 내 시정촌으로 나누어 읽는 법과 함께 정리했습니다. 先斗町(폰토초), 太秦(우즈마사), 一口(이모아라이) 같은 대표적인 지명부터 天使突抜(덴시쓰키누케) 같은 마을 이름, 역명까지 위치와 확인된 유래를 짧게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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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토초
先斗町는 ‘폰토초(ぽんとちょう)’라고 읽습니다. 산조도리 한 블록 남쪽에서 시조도리까지, 가모가와와 기야마치도리 사이에 약 490m 이어지는 좁은 거리이자 하나마치(花街, 게이코·마이코의 거리)의 이름입니다. 포르투갈어 ponto(끝)와 연결 짓는 설 등이 있지만, 왜 그렇게 읽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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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즈도리
不明門通(不明門通り)는 ‘아케즈도리(あけずどおり)’라고 읽습니다. ‘아케즈노몬도리(あけずのもんどおり)’라고 읽기도 하며, 길 북쪽 끝에 있는 이나바 야쿠시(이나바도 뵤도지)의 문이 늘 닫혀 있었던 것이 이름의 유래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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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마사
太秦은 ‘우즈마사(うずまさ)’로 읽습니다. 고대에 이곳을 근거지로 삼은 도래계 씨족 하타 씨(秦氏)와 관련된 지명으로, 하타 씨의 족장이 비단을 수북이 쌓아 바치고 ‘禹豆麻佐(우즈마사)’라는 가바네(성)를 받았다는 『일본서기』의 전승과 연결해 설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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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가와초
료가와초(両側町, 양쪽 마을)는 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집들이 하나의 마을을 이루는 교토의 마을 형태입니다. 블록의 안쪽이 아니라 길을 생활의 중심으로 삼아 묶인다는 점이 특징이며, 중세 이후 교토 마을 자치의 기본 단위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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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미 초등학교
반구미 초등학교(番組小学校)란 1869년(메이지 2년)에 교토의 조구미(町組, 마을 연합)를 재편한 ‘반구미(番組)’를 단위로 문을 연 64개 초등학교입니다. 국가 학제보다 3년 빨랐고, 주민이 가마도킨(竈金) 등으로 비용을 부담했으며, 학교는 마을 회소와 파출소, 화재 감시 망루까지 갖춘 지역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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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쿠추·라쿠가이
라쿠추(洛中)는 교토 도읍의 안쪽, 라쿠가이(洛外)는 그 바깥쪽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범위는 시대에 따라 바뀌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91년 오도이를 쌓은 뒤로는 그 안쪽을 라쿠추, 바깥쪽을 라쿠가이로 보는 구분이 분명해졌습니다. 지금의 교토시 구역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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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이
오도이(御土居)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91년 교토 둘레에 쌓은 약 22.5킬로미터의 토루와 해자입니다. 외적 방어, 가모가와 홍수 대책, 라쿠추(성안)와 라쿠가이(성 밖)의 구분이라는 역할을 했으며, 지금도 기타구와 가미교구 등에 국가 사적으로 9곳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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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스마도리·가와라마치도리 읽는 법
烏丸通는 ‘가라스마도리(からすまどおり)’, 河原町通는 ‘가와라마치도리(かわらまちどおり)’라고 읽습니다. 둘 다 교토시 중심부를 남북으로 지나는 주요 거리로, 지하철·한큐 역명과 시버스 정류장 이름, 교차로 이름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다만 동네 이름에는 ‘가라스마루’, ‘가와하라’로 읽는 예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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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院은 ‘사이’? ‘사이인’?
‘西院’은 란덴 역 이름에서는 ‘사이(さい)’, 한큐 역 이름에서는 ‘사이인(さいいん)’이라고 읽습니다. 우쿄구의 ‘西院○○町’라는 정명은 모두 ‘사이인’으로 읽히며, 지명으로는 ‘사이인’이 일반적입니다. 란덴 역만 ‘사이’라는 읽는 법을 역 이름에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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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마치야나기라는 이름의 유래
데마치야나기(出町柳)는 가모가와 서안의 ‘데마치(出町)’와 동안의 ‘야나기노쓰지(柳の辻)’를 조합한 역 이름입니다. 1925년(다이쇼 14년), 에이잔 전철의 전신이 데마치야나기~야세 구간을 개통했을 때 양쪽 강변의 지명을 잇는 이름으로 생겨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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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케도리라는 이름의 유래
오이케도리(御池通)라는 이름은 신센엔에 있던 연못으로 통하는 길이었던 데서 에도 시대 중기에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헤이안쿄의 산조보몬코지라는 좁은 골목이었으나, 전쟁 중 소개(疏開)를 거쳐 폭 50미터의 대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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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마치도리와 신쿄고쿠도리
데라마치도리는 헤이안쿄의 동쪽 끝인 도쿄고쿠대로(東京極大路)에 해당하는 거리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도시 개조로 많은 사찰이 모였습니다. 그 동쪽에 1872년 사찰 경내를 정리해 신쿄고쿠도리가 만들어졌고, 산조도리에서 시조도리까지 약 500미터의 번화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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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거리 이름 노래
‘まるたけえびすにおしおいけ(마루타케에비스니오시오이케)’로 시작하는 거리 이름 노래 ‘마루타케에비스(丸竹夷)’는 교토시 중심부의 동서 방향 거리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차례대로 외우기 위한 노래입니다. 남북 방향 거리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르는 ‘데라고코(寺御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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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오지도리와 호리카와도리의 역사
히가시오지도리는 예전에 ‘히가시야마도리(東山通)’라고 불렸으며, 그 이름은 ‘히가시야마 산조(東山三条)’ 같은 교차로 이름에 남아 있습니다. 호리카와(堀川)는 헤이안쿄를 조성할 때 운하로 정비되었다고 하며, 목재 운반과 유젠(友禅) 염색 천을 물에 씻는 데 쓰였습니다. 1955~1964년(쇼와 30년대)에 수원이 끊겼지만, 헤이세이 시대의 정비 사업으로 다시 시냇물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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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에이 대화재와 ‘신(新)’이 붙는 거리
호에이 대화재는 1708년 아부라노코지도리 아네야코지 남쪽(油小路通姉小路下る) 부근에서 번진 대화재입니다. 화재 뒤 고쇼(御所, 왕궁) 주변의 공가 마을을 넓히기 위해 민가가 가모가와 동쪽의 니조카와히가시 등으로 옮겨졌고, 이전한 곳에는 신히가시노토인도리처럼 원래 거리 이름에 ‘신(新)’을 붙인 이름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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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호 소수와 게아게 발전소
제1 비와호 소수(疏水, 운하 겸 수로)는 1885년에 착공해 다나베 사쿠로 등의 손으로 1890년에 완공되었습니다. 그 수력을 이용한 게아게 발전소는 1891년에 완공된 일본 최초의 사업용 수력발전소로, 공장과 노면 전차를 움직이며 교토의 근대화를 뒷받침했습니다. 소수는 지금도 교토 수돗물의 수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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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가와라는 이름의 유래
아라시야마 도게쓰교 부근을 흐르는 가쓰라가와는 ‘오이가와(大堰川, おおいがわ)’라고도 불립니다. 그 이름은 고대에 하타 씨가 쌓았다는 취수용 보 ‘가도노오이(葛野大堰, かどのおおい)’가 이 유역에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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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다노지(田자) 지역
교토 중심부의 ‘다노지(田の字) 지역’은 북쪽의 오이케도리, 남쪽의 고조도리, 동쪽의 가와라마치도리, 서쪽의 호리카와도리로 둘러싸인 지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안쪽을 지나는 가라스마도리와 시조도리를 겹치면 지도 위에 한자 ‘田(밭 전)’ 모양이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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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아라이(一口)
一口는 ‘이모아라이(いもあらい)’라고 읽으며, 구미야마초의 히가시이모아라이(東一口)·니시이모아라이(西一口)에 남은 지명입니다. 히가시이모아라이는 오구라이케(巨椋池) 남서쪽 제방 위에 생긴 어촌으로, 지명은 오구라이케에서 요도가와로 물이 빠지는 출구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다만 왜 ‘이모아라이’라고 읽는지는 여러 설이 있어 결정적인 설은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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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기쓰지
椥辻는 ‘나기쓰지(なぎつじ)’라고 읽는 야마시나구의 지명입니다. 이곳에 큰 나기나무(죽백나무)가 있었던 것이 지명의 유래로 여겨집니다. 지하철 도자이선의 역 이름과 ‘椥辻’가 붙은 11개 정명에 쓰이며, 구청이 있는 야마시나 종합청사에도 나기나무가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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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즈메
物集女는 ‘모즈메(もずめ)’라고 읽으며, 무코시 북부의 모즈메초에 남아 있는 지명입니다. 중세에는 모즈메 장원이 있었고, 무로마치·전국 시대에는 이 일대를 근거지로 한 모즈메 씨가 성관을 지었습니다. 모즈메성 터는 2024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마을 안에는 석실이 공개된 모즈메 구루마즈카 고분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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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시노
化野는 ‘아다시노(あだしの)’라고 읽으며, 우쿄구 사가토리이모토에 있는 지명입니다. 예로부터 도리베노·렌다이노와 함께 장송의 땅으로 알려졌고, 와카(和歌)에서는 인생의 무상함을 나타내는 ‘아다시노의 이슬(化野の露)’이라는 표현으로 쓰여 왔습니다. 아다시노 넨부쓰지에는 산과 들에 묻혀 있던 석불·석탑을 모은 ‘사이노카와라(西院の河原)’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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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아게(蹴上)
蹴上는 ‘게아게(けあげ)’라고 읽으며, 주소 표기에는 없고 주변 일대를 가리키는 지역 이름입니다. 오슈로 향하던 미나모토노 요시쓰네가 흙탕물을 차올린(蹴り上げた, 게리아게타) 무사를 벤 것이 유래라고 합니다. 옛 도카이도가 지나는 교토의 동쪽 관문이었으며, 지금은 지하철역과 인클라인, 발전소, 정수장 이름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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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자
間人은 ‘다이자(たいざ)’로 읽으며, 교탄고시 단고초의 동해(일본해)에 면한 지명입니다. 쇼토쿠 태자의 어머니 아나호베노 하시히토 황후가 소가 가문과 모노노베 가문의 다툼을 피해 이곳에 몸을 의탁했고, 떠날 때의 ‘고타이자(御退座)’에서 따와 ‘다이자’로 읽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지금도 바닷가에 황후와 태자의 모자상이 서 있으며, 다이자 게와 ‘싸움 수레(겐카 야타이)’로 알려진 어촌 마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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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구미
조구미(町組, ちょうぐみ)란 길을 사이에 두고 생긴 교토의 ‘조(町, 마을)’가 몇 개 모여 지역적으로 연합한 자치 조직입니다. 16세기 무렵 형성되었고, 메이지 초기 두 차례의 조구미 개정으로 65개 구미로 재편되었습니다. 이 구미가 반구미 초등학교의 단위가 되었고, 지금의 모토각쿠(元学区, 옛 학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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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진
니시진(西陣)은 교토시 가미교구에서 기타구에 걸친 지역의 명칭으로, 니시진오리(西陣織, 니시진 직물)의 발상지입니다. 오닌의 난 때 야마나 소젠의 서군이 진을 친 데서 ‘니시진(서쪽 진영)’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니시진이라는 행정구역은 없으며, 역사적인 니시진, 모토갓쿠(옛 학구)인 니시진 학구, 니시진오리 산지로서의 니시진 지구 등 맥락에 따라 가리키는 범위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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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탄(仁丹) 정명 표시판
진탄 정명 표시판이란 ‘仁丹(진탄, 은단)’ 마크가 들어간 동네 이름(정명, 町名) 표시판입니다. 모리시타 진탄은 메이지 43년(1910년)경부터 동네 이름 간판을 내걸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교토에서의 설치 시기에는 다이쇼 4년설·쇼와 3년설도 있어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거리 이름을 조합해 주소를 나타내는 간판이 지금도 교토의 길모퉁이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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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리
‘한나리(はんなり)’는 고상하고 밝으며 화사한 모양을 나타내는 교코토바(京ことば, 교토 말)입니다. 색감에 대해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무로마치 시대의 문헌에 용례가 있으며, 지금도 교토·오사카 지방을 중심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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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카스
‘호카스(ほかす)’는 ‘버리다’라는 뜻의 교토 말(교코토바)입니다. ‘それはホカシたらあかん。(소레와 호카시타라 아칸, 그건 버리면 안 돼)’처럼 씁니다. 일본어 국어사전에서는 ‘호카스(放下す, ほうかす)’가 변한 말인가 하고 설명하며, 옛 전국 조사에서는 긴키 지방 중앙부에 많은 표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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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스
교코토바(교토 말)의 ‘나오스(なおす)’는 ‘정리하다’ ‘집어넣다’라는 뜻입니다. ‘その本、ナオシといて。(소노 혼, 나오시토이테. 그 책 정리해 둬)’처럼 씁니다. 국어사전에서는 긴키·규슈 등의 용법으로 소개되며, 옛 전국 조사에서도 긴키와 규슈에서 ‘쓴다’는 응답이 많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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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키니
‘오오키니(おおきに)’는 ‘고마워요’라는 뜻의 교코토바입니다. ‘遠いところをわざわざオーキニ。(먼 데서 일부러 와 줘서 고마워요)’처럼 씁니다. 원래는 ‘크게, 매우’라는 뜻의 부사였으며, ‘大きにありがとう(매우 고맙습니다)’ 등이 줄어 감사의 말이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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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미소 조니(흰 된장 떡국)
시로미소 조니는 다시마 육수에 시로미소(흰 된장)를 풀고 둥근 떡·가시라이모·무 등을 넣는 교토의 설날 조니(떡국)입니다. 설날 사흘(산가니치) 동안 각 가정에서 먹으며, 만드는 법은 대대로 이어져 온다고 합니다. 재료 하나하나와 써는 법에 원만, 장수 등의 소원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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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도상
오쿠도상(おくどさん)은 밥과 요리를 짓고 끓이는 부뚜막을 가리키는 교코토바(교토 말)입니다. 교마치야(교토 전통 목조 주택)에서는 도리니와(通り庭)의 중간쯤이나 조금 안쪽 흙바닥에 놓이며, 방화와 배연을 위해 위쪽이 히부쿠로(火袋)라는 트인 공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위쪽 고진다나의 호테이상(포대 인형)과 설날의 가가미모치 등 생활의 관습과도 깊이 이어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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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마이즈케
센마이즈케(千枚漬)는 쇼고인 순무를 얇게 깎아 다시마와 식초 등과 함께 절인 교토의 절임입니다. 스구키즈케·시바즈케와 함께 교토 3대 절임의 하나로 여겨지며, 장기 보존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유산 발효 없이 섬세하게 절여 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쇼고인 순무의 출하가 시작되는 11월 무렵부터 만들어져, 겨울 교토의 맛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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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자도리(釜座通)
釜座通는 ‘가만자도리(かまんざどおり)’라고 읽는, 교토 중심부의 남북 방향 거리입니다. 범종과 차솥(차노유 가마)을 주조하던 ‘산조 가만자(三条釜座)’가 있었던 것이 거리 이름의 유래라고 합니다. 니시노토인도리와 신마치도리 사이를 지나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시가지 개조로 마을 한가운데에 낸 거리 가운데 하나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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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메가이도리
醒ケ井通는 ‘사메가이도리(さめがいどおり)’로 읽는 시모교구의 남북 거리로, 호리카와도리 바로 동쪽을 지납니다. 천하제일의 명수로 알려진 우물 ‘佐女牛井(사메가이)’가 있었던 것이 유래로 여겨집니다. 우물은 호리카와도리 확장으로 사라졌지만, 터를 알리는 비석과 ‘佐女牛井町(사메가이초)’라는 마을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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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노반바도리
柳馬場通는 ‘야나기노반바도리(やなぎのばんばどおり)’로 읽는 교토 중심부의 남북 거리로, 도미노코지도리와 사카이마치도리 사이를 지납니다. 이름의 유래로는 버드나무 가로수가 있는 유곽 ‘니조 야나기마치’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과, 호코쿠 축제의 기마 행렬(우마조로에) 때 버드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니조 야나기마치는 훗날의 하나마치 시마바라의 시작으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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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모노타나도리
衣棚通는 ‘고로모노타나도리’ 또는 ‘고로모타나도리’로 읽는 교토 중심부의 남북 방향 거리입니다. 일대에 법의 등을 선반에 진열해 파는 가게가 많았던 것이 유래로 여겨집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시가지 개조로 열린 거리 중 하나로 여겨지며, 신마치도리와 무로마치도리 사이를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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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마에도리
御前通는 ‘온마에도리(おんまえどおり)’라고 읽는 남북 방향 거리로, 북쪽 기타오지도리에서 남쪽 구조도리 너머까지 약 7.2킬로미터입니다. 기타노 덴만구의 문 앞(동쪽)을 지나는 것이 이름의 유래로 여겨집니다. 헤이안쿄에서는 다이다이리(궁성)의 서쪽 끝을 이루는 니시오미야 대로에 해당하며, 거리 이름 노래에 나오는 ‘온마에’는 혼간지의 온마에도리라는 다른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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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시쓰키누케
天使突抜는 ‘덴시쓰키누케(てんしつきぬけ)’로 읽는 시모교구의 마을 이름으로, 히가시나카스지도리 양쪽에 1초메부터 4초메까지 있습니다. ‘天使(덴시)’는 ‘덴시노미야’라 불린 고조 덴진구를 말하며, 1590년 무렵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교토 개조 때 그 경내를 뚫고(쓰키누케) 남북 길을 낸 것이 유래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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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치초
都市町는 ‘도이치초(といちちょう)’로 읽는, 고조오하시 남서쪽에 있는 시모교구의 마을 이름입니다. 헤이안 천도 이듬해에 동시·서시가 열렸고, 그 수호신인 이치히메 신사(市比賣神社)의 오타비쇼(신위 임시 안치소)가 있었던 것이 유래로 여겨집니다. ‘都市’를 ‘도시(とし)’로 읽는 보통 낱말과는 읽는 법도 뜻도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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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칸나초
笋町는 ‘다칸나초(たかんなちょう)’로 읽는 나카교구의 마을 이름입니다. ‘笋(다칸나)’은 죽순의 옛 이름으로, 시조가라스마 북쪽에 있는 이 마을은 기온 마쓰리의 모소야마(孟宗山)를 내보내는 마을입니다. 모소야마는 병든 어머니를 위해 눈 속에서 죽순을 캐낸 맹종의 고사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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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카데야초
百足屋町는 ‘무카데야초(むかでやちょう)’라고 읽는 나카교구의 마을 이름입니다. 지네의 많은 다리를 많은 손님에 빗대어, 그 길한 뜻을 본떠 상호로 삼은 거상 ‘무카데야’가 유래로 여겨집니다. 나카교구에는 에비스가와도리 사카이마치와 신마치도리 다코야쿠시 사가루, 두 곳에 무카데야초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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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오지초
悪王子町(아쿠오지초)는 시모교구의 정명으로, 정명으로는 ‘あくおおじちょう’라고 읽습니다. ‘悪王子’는 힘차다는 뜻으로, 스사노오노미코토의 아라미타마를 모신 아쿠오지샤(悪王子社)가 있었던 것이 유래로 여겨집니다. 신사는 시조가라스마 남동쪽에서 고조가라스마 북쪽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야사카 신사 경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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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조한지키초
二帖半敷町는 ‘니조한지키초(にじょうはんじきちょう)’라고 읽는, 시조가라스마 남쪽에 있는 시모교구의 마을 이름으로, 지하철 시조역의 소재지이기도 합니다. 유래에는 주지가 고조지(五条寺)를 두 제자에게 반씩 나눠 주었다는 설과, 다다미 5장짜리 집을 형제가 나눴다는 설이 있습니다. 둘 다 ‘5를 반으로 나눠 다다미 두 장 반’이라는 점에서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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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카치초
皂莢町는 ‘사이카치초(さいかちちょう)’로 읽는 가미교구의 마을 이름입니다. 큰 사이카치 나무가 있었던 것이 마을 이름의 유래로 여겨집니다. 사이카치(주엽나무류)는 가시가 있는 줄기와 비틀린 긴 꼬투리가 특징인 콩과 나무로, 꼬투리는 빨래에 쓰였습니다. 교토부 안에서는 드물어져 부의 준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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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로가이케
深泥池는 ‘みどろがいけ(미도로가이케)’로도 ‘みぞろがいけ(미조로가이케)’로도 읽는 기타구 가미가모의 연못입니다. 연못 바닥에 수 미터의 진흙이 쌓여 있는 것이 이름의 유래로 여겨집니다. 주변의 마을 이름 ‘上賀茂深泥池町’는 ‘かみがもみどろいけちょう(가미가모미도로이케초)’로, ‘が(가)’를 넣지 않고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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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기노(柊野)
柊野는 ‘히라기노(ひらぎの)’라고 읽는, 기타구 가미가모 신사 북쪽의 가모가와 양쪽 기슭에 펼쳐진 지역 이름입니다. 옛날에 호랑가시나무(柊, 히이라기)가 온통 무성했던 것이 지명의 유래라고 합니다. 주소의 동네 이름에는 ‘柊野’가 없고, 학구와 초등학교, 댐, 버스 정류장 이름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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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라라자카(雲母坂)
雲母坂는 ‘기라라자카(きららざか)’라고 읽는, 사쿄구 슈가쿠인에서 히에이산으로 오르는 산길입니다. 화강암 토사에 섞인 운모(雲母)가 이름의 유래라고 합니다. 교토에서 엔랴쿠지로 가는 가장 짧은 길로, 승려와 칙사가 오른 옛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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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가타니
鹿ケ谷는 ‘시시가타니(ししがたに)’로 읽는, 사쿄구 뇨이가타케 서쪽 기슭에 펼쳐진 지역 이름입니다. 지쇼 대사(엔친)가 이곳을 찾았을 때 사슴 한 마리가 나타나 길을 안내했다는 전승이 지명의 유래로 여겨집니다. 지금도 ‘鹿ケ谷法然院町’ 등 18개 마을 이름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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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코노야시로(蚕ノ社)
蚕ノ社는 ‘가이코노야시로(かいこのやしろ, 누에의 신사)’라고 읽으며, 우쿄구 우즈마사에 있는 고노시마니마스아마테루미타마 신사(木嶋坐天照御魂神社)의 통칭으로 란덴 역명이기도 합니다. 경내에 누에를 모시는 ‘양잠(고카이) 신사’가 있는 것이 이름의 유래라고 합니다. 양잠과 베 짜기에 뛰어난 하타 씨(秦氏)의 씨족신으로 여겨지는 오래된 신사이며, 세 개의 도리이를 조합한 미하시라 도리이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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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마자키 신사
車折神社는 ‘くるまざきじんじゃ(구루마자키 진자)’로 읽는 우쿄구 사가의 신사로, 란덴 역명과 버스 정류장 이름도 되었습니다. 고사가 천황이 오이강으로 나들이했을 때 신사 앞에서 우차의 끌채(轅, 나가에)가 부러진 일로 ‘구루마자키 다이묘진’이라는 신호(神號)를 내렸고, 이후 ‘구루마자키 신사’라 불렸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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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구마노(今熊野)
今熊野는 히가시야마구의 지역 이름으로, 今熊野池田町 등의 동네 이름에서는 ‘이마구마노(いまぐまの)’라고 탁음으로 읽습니다. 이마구마노 학구라는 이름은 에이랴쿠 원년(1160년)에 고시라카와 상황이 기슈(紀州)의 구마노에서 신을 모셔 와 창건한 新熊野(이마쿠마노, いまくまの) 신사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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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주지·간슈지(勧修寺)
勧修寺는 야마시나구에 있는 절의 이름은 ‘가주지(かじゅうじ)’, 勧修寺仁王堂町 등 주변 동네 이름은 ‘간슈지(かんしゅうじ)’로 구별해 읽는 이름입니다. 다이고 천황이 쇼타이 3년(900년)에 생모의 바람에 따라 창건하고, 천황의 할아버지인 후지와라노 다카후지의 시호를 따서 勧修寺라 이름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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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쇼지마
中書島는 ‘주쇼지마(ちゅうしょじま)’라고 읽는 후시미구의 지명으로, 게이한 본선·우지선의 역 이름이기도 합니다. 후시미 성하마을 시절 와키사카 나카쓰카사노다이후 야스하루의 저택이 있었고, 나카쓰카사노다이후(中務大輔)의 중국식 명칭 ‘中書(주쇼)’가 지명으로 굳어졌다고 합니다. 원래는 우지가와로 가로막힌 섬이었으며, 지금의 히가시야나기초·니시야나기초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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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조메
墨染는 ‘스미조메(すみぞめ)’로 읽는 후시미구의 지명으로, 게이한 본선 스미조메역과 墨染町·深草墨染町라는 마을 이름이 되어 있습니다. 후지와라노 모토쓰네의 죽음을 슬퍼한 가인(歌人)이 노래를 바치자 벚꽃이 먹빛(스미조메 색)으로 피었다는 墨染寺(보쿠센지)의 전설이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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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모쿠마치
撞木町는 후시미구의 마을 이름으로, 마을 이름으로는 ‘슈모쿠마치(しゅもくまち)’로 읽습니다. 1604년에 열린 하나마치(유곽 거리)의 모양이 종을 쳐서 울리는 T자형 막대 ‘슈모쿠(撞木)’를 닮았다는 데서 이름이 생겼다고 전해지며, 이 내용은 1918년 비석의 비문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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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소
納所는 ‘노소(のうそ)’라고 읽는 후시미구의 지역 이름으로, 노소이즈미야·노소키타시로보리 등 12개 마을 이름에 남아 있습니다. 노소는 ‘물품을 들여 두는 곳’을 뜻하며, 요도가와를 거슬러 도읍으로 보내는 물자를 옮겨 싣기 위해 잠시 보관하는 곳으로 생겨났다고 합니다. 무로마치 시대부터 히데요시 시대까지 이곳에 요도 고성(淀古城)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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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즈카시
羽束師는 ‘하즈카시(はづかし)’라고 읽는 후시미구의 지역 이름으로, 하즈카시시미즈초·하즈카시히시카와초 등의 정명에 남아 있습니다. 고대 오토쿠니군 하쓰카시향(羽束郷)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름으로, 어원에는 하지 씨(土師氏)와 연결하는 설, 토목을 맡은 하쓰카시베(泥部)와 연결하는 설, 화살 제작에서 왔다는 설 등이 있습니다. 지역의 중심에는 『쇼쿠니혼기(続日本紀)』에 ‘波都賀志神’으로 기록된 하즈카시 신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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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노(祝園)
祝園는 ‘호소노(ほうその)’라고 읽는 소라쿠군 세이카초의 지명입니다. 옛날에는 ‘하후리소노(波布理曽能·羽振苑)’로 불렸고, 『고사기』『일본서기』의 다케하니야스히코(武埴安彦) 전설에 등장하는 땅입니다. 호소노 신사에는 그 전설과 이어진, 교토부 지정 무형민속문화재인 이고모리 마츠리(居籠祭)가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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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즈케
‘부부즈케(ぶぶ漬け)’는 오차즈케(お茶漬け, 밥에 차를 부어 먹는 요리)를 말하며, ‘부부(ぶぶ)’는 차나 뜨거운 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부부즈케데모 도도스(ぶぶ漬けでもどうどす, 오차즈케라도 드시겠어요?)’라는 권유를 받으면 돌아가 달라는 신호라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그런 말을 들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는 조사도 있어 속설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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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코다키
다이코다키(大根焚き, だいこだき)는 12월을 중심으로 교토의 절에서 기도한 무를 큰 솥에 끓여 참배객에게 나누어 주는 행사입니다. 먹으면 중풍(뇌혈관 질환)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센본 샤카도(다이호온지)에서는 해마다 12월 7일·8일의 조도에(成道会, 석가의 깨달음을 기리는 법회)에 맞추어 열리며, 2026년은 12월 7일(월)·8일(화)에 열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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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쓰키
‘돈쓰키(どんつき)’는 길 등이 막힌 곳, 즉 막다른 곳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주로 간사이 지방에서 쓰는 말로 여겨지며, 교토 말로는 ‘どんつきどす(돈쓰키도스, 막다른 곳입니다)’라는 표현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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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사쿠
핫사쿠(八朔, はっさく)는 ‘하치가쓰 사쿠지쓰(八月朔日, 8월 초하루)’, 즉 8월 1일을 말합니다. 교토의 하나마치(花街, 게이코·마이코의 거리)에서는 이날 게이코(芸妓)와 마이코(舞妓)가 예능 스승과 오차야(お茶屋, 연회를 여는 찻집)를 찾아가 평소의 감사를 전하는 행사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농가에서 첫 벼 이삭을 은인에게 보내던 풍습이 퍼진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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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노요진(火迺要慎) 부적
‘火迺要慎(히노요진)’은 교토시 최고봉인 아타고산 산 위의 아타고 신사가 내주는 화재 막이·방화 부적입니다. 교토에서는 부엌이나 아궁이(오쿠도상) 가까이에 붙여 화재를 막는 풍습이 있으며, 매년 7월 31일 밤부터 8월 1일 새벽까지 열리는 센니치마이리(千日詣)에 참배하면 천 일분의 영험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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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노나나쿠치
교노나나쿠치(京の七口)는 교토와 각지를 잇는 가도(街道)의 출입구를 묶어 부르는 말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91년에 쌓은 오도이(御土居)의 출입구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하지만, 출입구의 수와 구성은 시대와 자료에 따라 다르며, ‘7(나나)’이 꼭 일곱 개라는 뜻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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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즈키
미나즈키(水無月)는 흰 우이로(쌀가루 등을 쪄서 만든 떡 과자) 위에 팥을 얹어 삼각형으로 잘라 나눈 교토의 화과자입니다. 교토에서는 6월 30일 ‘나고시노하라에(夏越の祓)’에 반년 동안 쌓인 부정을 씻어 내고 남은 반년의 무병식재를 빌며 먹는 풍습이 있습니다. 삼각형은 더위를 쫓는 얼음을, 팥의 붉은색은 액막이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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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데야스·오코시야스
‘오이데야스(おいでやす)’도 ‘오코시야스(おこしやす)’도 손님을 맞을 때 하는 ‘어서 오세요’에 해당하는 교코토바(교토 말)입니다. ‘오코시야스’는 손꼽아 기다리던 손님이나 단골에게, ‘오이데야스’는 처음 온 손님에게 쓴다는 구분이 소개되기도 하지만, 사전에서는 둘 다 같은 ‘어서 오세요’로 풀이되어 있어, 구분은 규칙이라기보다 기준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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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라마이리
오케라마이리(をけら詣り)는 섣달그믐 밤부터 설날 새벽까지 야사카 신사에서 열리는 해넘이 행사입니다. 약초인 오케라(白朮, 삽주)와 함께 피우는 ‘오케라비(をけら火)’를 깃초나와(吉兆縄)라고도 불리는 불씨 새끼줄(히나와)에 옮겨 받아 한 해의 무병식재를 빕니다. 해마다 12월 31일 오후 7시 반 무렵부터 설날 새벽 5시 무렵까지이며, 2026년에는 12월 31일(목)에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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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도 마이리
롯도 마이리는 오본(백중)을 앞두고 히가시야마구의 롯도 진노지(六道珍皇寺, ろくどうちんのうじ)에 참배해 무카에가네(迎え鐘, 맞이 종)를 치고 조상의 영 ‘오쇼라이상(お精霊さん)’을 맞이하는 교토의 행사로, ‘쇼료무카에(精霊迎え)’라고도 불립니다. 해마다 8월 7일~10일의 4일간이며, 2026년에는 8월 7일(금)~10일(월) 오전 6시~오후 10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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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구키
스구키(すぐき, 酸茎)는 교토 가미가모에서 오래전부터 만들어 온 순무의 한 종류이자, 그것을 소금만으로 절여 유산 발효시킨 절임의 이름입니다. 독특한 신맛이 특징이며, 센마이즈케·시바즈케와 함께 교토 3대 절임의 하나로 여겨집니다. 11월 중순부터 1월 무렵에 수확해 절이며, 겨울 교토를 대표하는 절임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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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시(辻子)와 로지(路地)
교토에서는 거리와 거리를 잇는 좁은 길을 ‘즈시(辻子·図子)’, 안쪽에서 막다른 길을 ‘로지(路地, ろーじ)’라고 구분해 부르기도 합니다. 다만 즈시까지 포함해 로지라고 통칭하는 경우도 많아, 뚜렷한 구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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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분지와 문화재의 밀도
교토 분지는 동쪽은 히에이산과 히가시야마 연봉, 서쪽과 북쪽은 아타고산과 기타야마 연봉에 둘러싸이고 남쪽이 트인 분지입니다. 교토 시가지는 이 분지를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가운데를 가모가와와 가쓰라가와가 북에서 남으로 흐릅니다. 시역은 남북 약 49.5킬로미터, 면적은 827.83제곱킬로미터이며, 그 안에 전국 국보의 약 20%가 모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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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노하시다테와 우지차로 보는 교토부의 넓이
교토부는 동해(일본해)에 면한 북부부터 우지차 산지가 펼쳐진 남부까지 남북으로 길쭉한 부입니다. 북부 미야즈시의 아마노하시다테와 남부의 우지차 문화를 나란히 놓으면, 교토가 교토시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부 안에는 15시 10정 1촌의 26개 시정촌이 있으며, 면적은 4,612.21제곱킬로미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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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시야마·도게쓰교·대나무 숲과 강의 이름
아라시야마의 풍경은 도게쓰교와 대나무 숲뿐 아니라, 장소에 따라 호즈가와·오이가와·가쓰라가와로 이름을 바꾸는 한 줄기 강이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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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모가와(鴨川)·가모가와(賀茂川)·다카노가와의 합류점
교토의 가모가와(鴨川)는 데마치야나기 부근에서 다카노가와와 합류합니다. 상류 쪽에서는 같은 ‘가모가와’를 ‘賀茂川’로 표기하기도 하며, 지류인 시라카와는 히에이산을 수원으로 기온을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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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타가와·우지가와·요도가와로 이어지는 물길
비와호에서 흘러나온 물은 세타가와, 우지가와로 이름을 바꾸고, 교토부와 오사카부 경계 부근에서 가쓰라가와·기즈가와와 합류해 요도가와가 됩니다. 하천법에서는 세타가와와 우지가와도 포함해 ‘요도가와’로 정하고 있으며, 이름의 차이는 유역의 땅과 역사를 비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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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노쿠라 료이와 교토의 수운
스미노쿠라 료이(角倉了以)는 에도 시대 초에 오이가와와 다카세가와를 열어, 내륙의 교토로 물자를 나르는 물길을 정비한 상인입니다. 강을 도시의 물류망으로 바꾼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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御陵(미사사기)와 帷子ノ辻(가타비라노쓰지) 읽는 법
야마시나구의 ‘御陵’는 미사사기(みささぎ), 란덴의 ‘帷子ノ辻’는 가타비라노쓰지(かたびらのつじ)라고 읽습니다. 둘 다 역 이름으로 일상적으로 쓰이지만, 처음 보면 읽기 어려운 교토의 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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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3대 마쓰리란
교토 3대 마쓰리는 봄의 아오이 마쓰리, 여름의 기온 마쓰리, 가을의 지다이 마쓰리입니다. 아오이 마쓰리는 시모가모 신사와 가미가모 신사, 기온 마쓰리는 야사카 신사, 지다이 마쓰리는 헤이안 신궁의 축제로, 시작된 시대도 성격도 다릅니다. 8월의 고잔 오쿠리비도 교토를 대표하는 행사이지만, 조상의 영혼을 떠나보내는 불교 행사여서 3대 마쓰리에는 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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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이 마쓰리의 의상·행렬 경로·이름의 유래
아오이 마쓰리(葵祭)는 해마다 5월 15일에 열리는 교토 3대 마쓰리의 하나로, 원래는 ‘가모 마쓰리(賀茂祭)’라고 불렸습니다. 발(御簾)과 우차(牛車) 등을 후타바아오이(二葉葵) 잎으로 장식하는 것이 이름의 유래로 여겨지며, 헤이안 의상을 입은 행렬 ‘로토노기(路頭の儀)’가 교토 고쇼를 출발해 시모가모 신사를 거쳐 가미가모 신사까지 약 8킬로미터를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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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 마쓰리의 한 달과 야마보코
기온 마쓰리(祇園祭)는 야사카 신사의 제례로서 7월 한 달 동안 다채로운 행사가 이어집니다. 역병 퇴치를 비는 기도에서 비롯되었으며, 야마보코(山鉾, 장식 수레) 순행에는 34기의 야마보코가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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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다이 마츠리 행렬은 움직이는 역사 두루마리
지다이 마츠리(時代祭)는 10월 22일, 약 2,000명이 각 시대의 의상을 입고 약 2킬로미터를 나아가는 행렬입니다. 교토 고쇼를 출발해 헤이안 신궁으로 향하는 ‘움직이는 역사 두루마리 그림(歴史絵巻)’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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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잔 오쿠리비의 밤
고잔 오쿠리비(五山送り火)는 8월 16일 밤, 교토를 둘러싼 산들에 다섯 개의 글자와 모양을 불로 밝히는 행사입니다. 오본(お盆, 음력 7월 보름 무렵의 조상 맞이 명절)에 맞이한 조상의 영혼을 다시 떠나보내는 여름 교토의 매듭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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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반자이와 교토의 다시 문화
오반자이(おばんざい)는 교토 가정에서 대대로 이어져 온 일상 반찬입니다. 제철 식재료 등을 살리는 생활의 지혜가 담겨 있고, 맛의 바탕에는 다시마와 가쓰오부시로 낸 다시(육수)가 있습니다. 교토시는 다시마와 가쓰오부시·깎은 가쓰오부시에 쓰는 지출액이 모두 정령지정도시 가운데 1위(2016~2018년 평균)로, 다시는 교토 식문화에 빠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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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쿠·니시진오리·교야키의 연결고리
교토의 전통은 무대 예능뿐 아니라 의상을 수놓는 직물과 생활 속 그릇으로도 이어집니다. 노가쿠, 니시진오리, 교야키·기요미즈야키는 기술과 미의식이 세대를 넘어 이어져 온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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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 교토의 문화재와 17개 구성 자산
세계문화유산 ‘고도 교토의 문화재’는 교토시 내 14곳, 우지시 2곳, 시가현 오쓰시 1곳, 모두 17곳의 사찰·신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994년에 등재되었습니다. 건조물 198동과 정원 12곳이 포함되며, 니조성을 제외한 16곳은 종교 시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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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로쿠온지의 3층 건축
금각사(金閣寺)의 정식 이름은 로쿠온지(鹿苑寺)입니다. 가마쿠라 시대 사이온지 가문의 별장이 있던 땅에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1397년부터 산장 기타야마도노(北山殿)를 지은 것이 시작이며, 사리전 금각은 층마다 다른 건축 양식을 겹쳐 놓았습니다. 지금의 금각은 1950년 소실 뒤 1955년에 재건된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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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각(긴카쿠)·지쇼지와 히가시야마 문화
은각사(銀閣寺, 긴카쿠지)의 정식 이름은 지쇼지(慈照寺)입니다.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1482년부터 조성한 산장 히가시야마도노(東山殿)를 요시마사 사후에 선종 사찰로 바꾼 것이 시작입니다. 국보인 은각(관음전)과 도구도(東求堂), 모래를 쌓아 만든 긴샤단(銀沙灘)·고게쓰다이(向月台)가 있는 정원에 히가시야마 문화의 미의식이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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뵤도인 호오도(봉황당)와 극락정토의 표현
우지의 뵤도인 호오도(鳳凰堂, 봉황당)는 후지와라노 요리미치가 1053년에 완성한 아미타당입니다. 말법(末法)이 시작된다고 여겨진 1052년에 별장을 절로 바꾸고, 연못 건너 서쪽에 극락정토를 떠올리게 하는 배치로 불당을 세웠습니다. 조초가 만든 아미타여래 좌상과 운중공양보살상에 극락정토에 대한 염원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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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텐만구와 텐진상의 25일
기타노 텐만구(北野天満宮)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모신, 전국 약 1만 2천 곳의 텐만구·텐진샤의 총본사입니다. 947년 헤이안쿄 북서쪽에 해당하는 기타노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매달 25일의 텐진 시장(天神市, 텐진이치)은 미치자네의 생일과 기일에서 비롯되었으며, 지금의 본전은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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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조성과 도쿠가와 쇼군의 교토
니조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교토 어소의 수호와 교토에 올라올 때의 숙소로 쌓은 성입니다. 고미즈노오 천황의 행차에 맞춰 지금의 넓이가 되었고, 막부 말기에는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대정봉환을 한 무대가 되었습니다. 메이지 이후 이궁을 거쳐 1939년 교토시에 하사되었으며, 니노마루 어전의 6동이 국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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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 금당·산보인 가라몬·난젠지 방장
교토의 국보 건축은 겉모습뿐 아니라 여러 양식의 융합, 지붕 재료, 이축의 이력에 개성이 있습니다. 도지 금당·다이고지 산보인 가라몬·난젠지 방장은 모두 모모야마 시대 무렵의 건물로, 재건·이축·전용을 거듭한 내력을 비교하면 건물이 지나온 시간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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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 햐쿠고 문서와 풍신뇌신도 병풍
교토에 남은 문화재는 건물만이 아닙니다. 도지 햐쿠고 문서(東寺百合文書)는 2만 통이 넘는 중세 기록을 전하며,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풍신뇌신도 병풍은 다와라야 소타쓰의 국보에서 오가타 고린의 모사본으로 이어졌으며, 둘을 비교하면 구도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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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안쿄의 도시 설계와 스자쿠오지
스자쿠오지(朱雀大路, すざくおおじ)는 헤이안쿄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관통한 폭 약 84미터의 대로로, 현재의 센본도리에 대략 해당합니다. 헤이안쿄는 794년 중국의 장안을 본떠 만들어졌으며, 스자쿠오지를 경계로 사쿄(左京)와 우쿄(右京)로 나뉘고, 조(条)·보(坊)·호(保)·조(町)라는 단위로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되었습니다. ‘사쿄 3조 4보 2정(左京三条四坊二町)’처럼 번호로 장소를 나타낼 수 있는 도읍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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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라 씨의 로쿠하라와 가마쿠라 막부의 단다이
로쿠하라(六波羅)는 가모가와 동쪽, 지금의 마쓰바라도리에서 시치조 부근까지를 가리킨 지명입니다. 헤이안 시대 말기에 헤이케(다이라 가문) 일문의 저택이 모였고, 조큐의 난 이후에는 가마쿠라 막부의 로쿠하라 단다이(探題, 교토 주재 감찰 기관)가 설치되어 조정 감시와 서국 지배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헤이케 저택의 흔적은 지금도 다몬초·가도와키초·이케도노초 등의 마을 이름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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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마치 막부와 하나노고쇼
하나노고쇼(花の御所, ‘꽃의 어소’)는 무로마치 막부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1378년 기타코지(지금의 이마데가와도리) 무로마치에 완성한 무로마치도노(무로마치다이)와, 이듬해 옮겨 간 북쪽의 하나테이(花亭)를 합친 쇼군 저택의 이름입니다. 가모가와의 물을 끌어오고 꽃을 많이 심은 정원이 아름다웠던 데서 붙은 이름이며, ‘무로마치 막부’라는 이름도 무로마치도노에서 유래했습니다. 터는 가미교구의 이마데가와도리·가미다치우리도리·가라스마도리·무로마치도리로 둘러싸인 일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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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닌의 난과 니시진이라는 이름
오닌·분메이의 난은 1467년에 시작되어 1477년까지 약 11년 동안 이어진 내란으로, 교토가 주 전장이 되었습니다. 동군은 하나노고쇼를 중심으로 ‘오카마에(御構)’라고 부르는 진지를 쌓았고, 가미교 시가지의 대부분이 불탔습니다. ‘니시진(西陣, 서쪽 진영)’이라는 이름은 야마나 소젠이 이끄는 서군이 호리카와 가미다치우리 부근에 진을 친 데서 유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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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교토 개조와 주라쿠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헤이안쿄의 다이다이리(궁성) 터에 해당하는 우치노(内野)에 주라쿠다이(聚楽第)를 짓고, 토성 오도이(御土居)의 축조와 히가시야마 대불전의 건립을 통해 교토의 도시를 크게 바꾸었습니다. 주라쿠다이는 1587년에 완성되었지만 불과 8년 뒤에 철거되었고, 지금은 조스이초·우키타초 등의 정명과 ‘주라쿠쓰치(聚楽土)’라는 이름에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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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메이 대화재와 불탄 교토
텐메이 대화재는 1788년 1월 30일(음력) 이른 아침, 가모가와 동쪽의 돈구리즈시(団栗辻子)에서 일어난 교토 역사상 최대의 화재입니다. 동풍을 타고 가모가와를 넘어, 북쪽은 구라마구치도리에서 남쪽은 시치조도리, 서쪽은 센본도리까지 당시 시가지의 거의 전역을 태웠으며, 약 3만 7천 채가 불타고 약 6만 5천 세대가 집을 잃었습니다. 고쇼(황궁)와 니조성, 동서 혼간지도 불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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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의 교토: 이케다야 사건과 긴몬의 변
1864년(겐지 원년)의 교토에서는 6월 5일의 이케다야 사건에 이어, 7월 19일에 조슈번이 교토 고쇼의 하마구리고몬(蛤御門) 등에서 아이즈·사쓰마·막부 군과 싸운 긴몬의 변이 일어났습니다. 전화(戰火)에서 번진 ‘돈돈야케(どんどん焼け)’는 북쪽으로는 마루타마치도리에서 남쪽으로는 시치조도리까지, 약 800개 마을·2만 7천 세대에 피해를 입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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