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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헤이안쿄, 무로마치 막부, 히데요시, 막부 말기. 교토의 모습을 바꾼 시대와 인물을 따라갑니다.

9개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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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헤이안쿄, 무로마치 막부, 히데요시, 막부 말기. 교토의 모습을 바꾼 시대와 인물을 따라갑니다.

역사·인물角倉了以と京都の水運

스미노쿠라 료이와 교토의 수운

스미노쿠라 료이(角倉了以)는 에도 시대 초에 오이가와와 다카세가와를 열어, 내륙의 교토로 물자를 나르는 물길을 정비한 상인입니다. 강을 도시의 물류망으로 바꾼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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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二条城と徳川将軍の京都

니조성과 도쿠가와 쇼군의 교토

니조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교토 어소의 수호와 교토에 올라올 때의 숙소로 쌓은 성입니다. 고미즈노오 천황의 행차에 맞춰 지금의 넓이가 되었고, 막부 말기에는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대정봉환을 한 무대가 되었습니다. 메이지 이후 이궁을 거쳐 1939년 교토시에 하사되었으며, 니노마루 어전의 6동이 국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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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平安京の都市設計と朱雀大路(すざくおおじ)

헤이안쿄의 도시 설계와 스자쿠오지

스자쿠오지(朱雀大路, すざくおおじ)는 헤이안쿄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관통한 폭 약 84미터의 대로로, 현재의 센본도리에 대략 해당합니다. 헤이안쿄는 794년 중국의 장안을 본떠 만들어졌으며, 스자쿠오지를 경계로 사쿄(左京)와 우쿄(右京)로 나뉘고, 조(条)·보(坊)·호(保)·조(町)라는 단위로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되었습니다. ‘사쿄 3조 4보 2정(左京三条四坊二町)’처럼 번호로 장소를 나타낼 수 있는 도읍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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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平氏の六波羅と鎌倉幕府の探題

다이라 씨의 로쿠하라와 가마쿠라 막부의 단다이

로쿠하라(六波羅)는 가모가와 동쪽, 지금의 마쓰바라도리에서 시치조 부근까지를 가리킨 지명입니다. 헤이안 시대 말기에 헤이케(다이라 가문) 일문의 저택이 모였고, 조큐의 난 이후에는 가마쿠라 막부의 로쿠하라 단다이(探題, 교토 주재 감찰 기관)가 설치되어 조정 감시와 서국 지배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헤이케 저택의 흔적은 지금도 다몬초·가도와키초·이케도노초 등의 마을 이름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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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室町幕府と花の御所

무로마치 막부와 하나노고쇼

하나노고쇼(花の御所, ‘꽃의 어소’)는 무로마치 막부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1378년 기타코지(지금의 이마데가와도리) 무로마치에 완성한 무로마치도노(무로마치다이)와, 이듬해 옮겨 간 북쪽의 하나테이(花亭)를 합친 쇼군 저택의 이름입니다. 가모가와의 물을 끌어오고 꽃을 많이 심은 정원이 아름다웠던 데서 붙은 이름이며, ‘무로마치 막부’라는 이름도 무로마치도노에서 유래했습니다. 터는 가미교구의 이마데가와도리·가미다치우리도리·가라스마도리·무로마치도리로 둘러싸인 일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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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応仁の乱と西陣の名前

오닌의 난과 니시진이라는 이름

오닌·분메이의 난은 1467년에 시작되어 1477년까지 약 11년 동안 이어진 내란으로, 교토가 주 전장이 되었습니다. 동군은 하나노고쇼를 중심으로 ‘오카마에(御構)’라고 부르는 진지를 쌓았고, 가미교 시가지의 대부분이 불탔습니다. ‘니시진(西陣, 서쪽 진영)’이라는 이름은 야마나 소젠이 이끄는 서군이 호리카와 가미다치우리 부근에 진을 친 데서 유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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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豊臣秀吉の京都改造と聚楽第(じゅらくだ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교토 개조와 주라쿠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헤이안쿄의 다이다이리(궁성) 터에 해당하는 우치노(内野)에 주라쿠다이(聚楽第)를 짓고, 토성 오도이(御土居)의 축조와 히가시야마 대불전의 건립을 통해 교토의 도시를 크게 바꾸었습니다. 주라쿠다이는 1587년에 완성되었지만 불과 8년 뒤에 철거되었고, 지금은 조스이초·우키타초 등의 정명과 ‘주라쿠쓰치(聚楽土)’라는 이름에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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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天明の大火と焼けた京都

텐메이 대화재와 불탄 교토

텐메이 대화재는 1788년 1월 30일(음력) 이른 아침, 가모가와 동쪽의 돈구리즈시(団栗辻子)에서 일어난 교토 역사상 최대의 화재입니다. 동풍을 타고 가모가와를 넘어, 북쪽은 구라마구치도리에서 남쪽은 시치조도리, 서쪽은 센본도리까지 당시 시가지의 거의 전역을 태웠으며, 약 3만 7천 채가 불타고 약 6만 5천 세대가 집을 잃었습니다. 고쇼(황궁)와 니조성, 동서 혼간지도 불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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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1864年の京都・池田屋事件と禁門の変

1864년의 교토: 이케다야 사건과 긴몬의 변

1864년(겐지 원년)의 교토에서는 6월 5일의 이케다야 사건에 이어, 7월 19일에 조슈번이 교토 고쇼의 하마구리고몬(蛤御門) 등에서 아이즈·사쓰마·막부 군과 싸운 긴몬의 변이 일어났습니다. 전화(戰火)에서 번진 ‘돈돈야케(どんどん焼け)’는 북쪽으로는 마루타마치도리에서 남쪽으로는 시치조도리까지, 약 800개 마을·2만 7천 세대에 피해를 입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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