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전도 이후의 교토
다른 표기·이름도쿄 천도

요점
천도의 조서도 정부의 포고도 없이, 메이지 2년(1869년)에 천황과 다이조칸이 도쿄로 옮겨 가면서 교토는 사실상 수도가 아니게 됨
인구는 메이지 6년(1873년)에 약 24만 명까지 줄었다가, 1902년 시역 확장을 거친 1912년에는 약 50만 명이 됨
재건의 밑천에는 도쿄 전도 때 천황이 교토에 하사한 자금도 쓰임
천황의 도쿄 행차와 ‘전도’
메이지 원년(1868년) 음력 7월, 에도를 도쿄라 칭한다는 조서가 내려졌고, 같은 해 음력 9월에 메이지 천황이 도쿄로 행차했습니다. 천황은 일단 교토로 돌아오지만, 메이지 2년(1869년) 음력 3월 28일에 다시 도쿄에 도착했고, 정부의 중추였던 다이조칸도 도쿄성 안으로 옮겨집니다. 헤이안쿄 이래의 수도였던 교토는 이렇게 사실상 수도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다만 메이지 정부는 도쿄 천도(遷都)를 공식적으로 표명하지 않았으며, 천황의 조서도 정부의 포고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1941년(쇼와 16년)에 문부성이 펴낸 『유신사』에서도 천도가 아니라, 단순히 ‘수도를 정한다’는 뜻의 ‘전도(奠都)’라는 말이 쓰이고 있습니다.
인구의 감소와 회복
에도 시대의 교토는 약 30만 명이 사는 일본 유수의 도시였습니다. 도쿄 전도로 조정 귀족과 관리들이 도쿄로 옮기자 상인들도 교토를 떠났고, 교토는 도시 쇠퇴의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교토(가미교·시모교)의 인구는 메이지 6년(1873년)에 에도 시대보다 20%가량 적었고, 메이지 11년(1878년)분 조사에서는 조금 더 줄었습니다. 증가로 돌아선 것은 그 뒤입니다. 1912년 숫자에는 1902년 시역 확장으로 교토시에 편입된 지역의 인구도 포함됩니다.
교토 인구의 변화(1873~1912년)
- 1873년(메이지 6년)
- 1878년(메이지 11년)
- 1889년(메이지 22년)
- 1912년(다이쇼 원년)
학교와 권업에서 시작된 재건
첫 번째 큰 움직임은 학교였습니다. 메이지 2년(1869년), 조구미를 재편한 반구미마다 64개의 반구미 초등학교가 문을 열었고, 나중에 제2대 교토부 지사가 되는 마키무라 마사나오가 그 건설을 강력히 밀어붙였습니다. 교토부의 초대 지사 나가타니 노부아쓰도 메이지 3년(1870년)의 건언서 등으로 부흥책에 나섭니다.
교토부는 메이지 3년에 화학 기술을 연구하는 세이미쿄쿠와 직업 지원 시설인 수산소를 세웠고, 메이지 4년(1871년)에는 도쿄 전도 때 하사된 자금 등을 밑천으로 산업 진흥 기관 권업장을 설치했습니다. 권업장을 거점으로 니시진오리와 기요미즈야키 지원, 맥주와 제지, 가죽 제품 공장 만들기가 잇따라 추진되었습니다.
박람회도 일찍부터 열렸습니다. 메이지 4년에 니시혼간지에서 열린 박람회는 일본 최초의 박람회이며, 이듬해인 메이지 5년(1872년)에는 교토부와 민간이 만든 교토 박람회사가 니시혼간지·겐닌지·지온인을 회장으로 제1회 교토 박람회를 엽니다. 그 여흥으로 선보인 기온의 가무가 지금의 미야코 오도리의 시작입니다.
소수의 전기와 전차
메이지 14년(1881년) 2월에 제3대 교토부 지사가 된 기타가키 구니미치는 도쿄 전도 뒤 깊이 가라앉은 교토에 활력을 되찾고자, 비와호에서 물을 끌어오는 소수 건설을 추진했습니다. 운수·관개·동력·식수를 목적으로 한 계획으로, 메이지 18년(1885년)에 착공해 메이지 23년(1890년)에 오쓰에서 가모가와 합류점까지의 제1 소수가 완성되었고 4월 9일에 준공식이 열렸습니다.
공사 도중에 수력 발전 채택이 결정되어, 메이지 24년(1891년)에 게아게 발전소가 완성됩니다. 그 전기로 메이지 28년(1895년) 2월 1일, 교토 전기철도가 일본 최초의 시가전차를 달리게 합니다. 같은 해 3월 15일에는 헤이안 천도 1100년 기념제에 맞춰 헤이안 신궁이 창건되었고, 4월 1일에는 오카자키에서 제4회 내국권업박람회가 개막했습니다. 박람회에는 4개월 동안 113만 명이 넘는 사람이 찾았고, 전차는 박람회장으로 가는 교통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소수 완성 뒤의 교토에서는 기념제 거행, 내국권업박람회 개최, 교토~마이즈루 간 철도 건설이 ‘3대 문제’라 불렸으며, 교토의 정재계는 이를 근대화의 호기로 보고 실현에 힘을 다했습니다.
메이지 말의 3대 사업
메이지 22년(1889년)에 탄생한 교토시는, 교토부 지사가 시장의 직무를 맡는 시제 특례가 메이지 31년(1898년) 9월 말에 폐지되면서 초대 시장에 나이키 진자부로가 취임했습니다. 나이키가 세운 제2 소수 구상은 제2대 시장 사이고 기쿠지로(사이고 다카모리의 아들)에게 이어져, 제2 비와호 소수 건설·상수도 부설·도로 확장과 시영 전차 ‘시덴’ 부설의 ‘3대 사업’으로 실현됩니다.
제2 소수는 메이지 41년(1908년)에 착공해 메이지 45년(1912년) 3월에 완성되었고, 4월에는 게아게 정수장에서 급수가 시작되었습니다. 6월 11일에는 교토시영 전차가 영업을 시작했고, 같은 달에 3대 사업의 준공식이 열렸습니다.
메이지 시대 재건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
교토시 학교역사박물관(시모교구 고코마치도리 붓코지 사가루)은 가이치 초등학교 교사를 활용해, 64개 반구미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교토 교육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개관은 9시~17시(입관은 16시 30분까지), 수요일 휴관(공휴일이면 다음 평일)입니다. 입관료는 성인 400엔, 초·중·고등학생 150엔이며, 교토 시내의 초·중학생은 토·일요일에 무료입니다(2026년 10월 기준).
비와호 소수 기념관(사쿄구 난젠지쿠사카와초, 지하철 도자이선 게아게역에서 도보 7분)은 입관 무료이고, 9시~17시(입관은 16시 30분까지)에 문을 열며, 월요일(공휴일·대체 휴일이면 다음 평일)과 연말연시(12월 29일~1월 3일)에 휴관합니다. 박람회 터에는 메이지 37년(1904년)에 오카자키 공원(사쿄구)이 문을 열었고, 지금은 그 일대에 헤이안 신궁과 미술관, 도서관이 늘어서 있습니다. 같은 해 12월 20일에 준공된 교토부청 구 본관(가미교구)은 화~금요일과 첫째·셋째·다섯째 토요일 10시~17시에 무료로 공개됩니다(공휴일·연말연시 제외). 메이지 45년에 개업한 시덴과 인연이 있는 곳으로는 우메코지 공원의 시덴 광장(시모교구)이 있습니다.
이 항목의 미니 퀴즈
메이지 원년(1868년) 음력 7월에 내려진 조서로 정해진 것은?
메이지 말에 제2대 교토 시장 사이고 기쿠지로가 추진한 ‘3대 사업’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1871년(메이지 4년)에 교토에서 열린 일본 최초의 박람회. 그 회장이 된 절은?
출처·확인 정보
내용 확인일: 2026년 10월 19일
업데이트: 2026년 10월 19일
참고 자료는 일본어로 되어 있습니다.
- 国土交通省「国会等の移転ホームページ ニューズレター『新時代』第77号 特集 東京遷都(奠都)の経緯」
- 国土交通省「国会等の移転ホームページ オンライン講演会 首都機能移転問題と『東京遷都』」
- 京都府「150年以上続く京都の酪農の歴史のはじまり」
- 京都府「明治時代の京都府の主な出来事」
- 京都府「京都府の年表 明治」
- 京都市「『明治150年・京都の奇跡プロジェクト』の推進について」(記者発表資料)
- 京都市埋蔵文化財研究所・京都市考古資料館「リーフレット京都 No.440 特別展示『洛中の江戸時代』によせて」
- 京都市会「京都市会のあらまし(令和7年版) 総記」
- 国立国会図書館デジタルコレクション「太政官正院地誌課編『日本地誌提要』巻之二 京都」
- 国立国会図書館デジタルコレクション「参謀本部『共武政表 明治十一年』山城 人口一百以上輻輳地」
- 京都市統計ポータル「推計人口(推計人口 長期時系列データ 明治22(1889)年以降)」
- 京都市「とうけいでみるきょうと 令和5(2023)年版」
- 京都市「都市史26 町組改正と小学校」
- 京都市「都市史27 琵琶湖疏水」
- 京都市「都市史29 京都の博覧会」
- 京都市「都市史30 平安遷都千百年紀念祭」
- 京都市上下水道局「琵琶湖疏水のご紹介」
- 京都市上下水道局「琵琶湖疏水の歴史(4)」
- 京都市交通局「市電保存館 on WWW」
- 平安神宮「由緒・歴史」
- 京都府「重要文化財 京都府庁旧本館」
- 京都府「旧本館の公開について」
- 京都市教育委員会「京都市学校歴史博物館 令和7年度企画展の開催について」
- 琵琶湖疏水記念館「利用案内・アクセス」
